6월과 7월 향기가 농담을 하다

  

녹색과 잘 어울리는 아카시아 향기로 물들었던 대기는 태양이 점점 가까워 지면서 좀 더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향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그 첫 번째 향기로 밤나무 꽃 내음이 있다. 벌써 웃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밤꽃 냄새는 우습게도 정액 냄새를 연상시킨다. 그러다 보니 밤나무 꽃 향은 향기라고 부르기엔 좀 노골적이고, 또 조금은 퇴폐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냄새라고 부르기엔 어떤 꽃에도 뒤지지 않을 분명한 개성을 지녔음은 물론이고 향기로서의 구성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절충해서 ‘내음’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향기다.

노골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분명히 노골적이다. 그러나 또한 서민적인 냄새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 거들먹거리거나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얼마나 솔직한가! 그리고 직설적이고 조금은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이다. 그림에 비유해 보자면 유머라고는 통 모를 것 같은 삼강오륜의 조선시대에 신윤복이 즐겨 그렸던 풍속화 속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그림 말이다.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이란 그림이다. 제목을 한글로 풀이하자면 ‘달빛아래 정을 나누는 연인들’쯤 되려나. 초승달이 떠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아주 절묘한 달밤에 한량으로 보이는 한 선비와 여인이 담벼락 밑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고 있다.

그림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다.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밤 11시 ~ 새벽 1시) 두 남녀의 심정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 엄격하게 예의를 중요시 했던 조선시대에는 자고로 그림이라고 하면 학문의 일부분으로서 자기 수양을 위해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녔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추사 김정희가 ‘문자향’, ‘서권기’를 (그림에서는 자고로 문자의 향기가 나야 하고, 책을 많이 읽은 기운으로 그려야 한다) 외치면서 학문을 닦듯 난을 치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런 류의 풍속화들은 서민들이야 이해하기 쉽고 보기 좋은 그림이니 대 환영이었겠지만 고매한 선비들의 입장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갓을 쓴 선비가 한 밤중에 남의 집 처자 같기도 하고 기생 같기도 한 여인을 몰래 만나는 모습이 숨기고 싶은 양반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 듯 하여 그들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기득권층의 권위나 금기시 하는 것에 대한 화가 나름대로의 도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한술 더 떠 <단오풍정>이란 그림에서는 조선시대 최초로 여인들을 반라의 상태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결국 만날 이런 그림을 그려대던 신윤복은 풍기문란죄로 도화서에서 쫓겨 났다고 한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는 심지어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선이 가늘고 섬세하며 아름답게 여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잘 그려낸 것을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보라. 애교와 내숭을 절묘하게 섞어서 눈꼬리에 올려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여자가 아닌 바에야 이처럼 여인의 감정을 잘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여인을 그린 신윤복의 그림 중 최고 걸작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 그림을 들 수 있다.

미인도.

고운 비단 위에 그린 그림으로 색색의 속치마 위에 고운 옥색의 치마를 입고 있으며 한 손으로는 호박으로 만든 것 같은 노리개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옷고름을 풀고 있다. 커다랗게 올린 머리 밑으로 고운 이마와 요염한 눈빛이 아름답다. 그윽하게 한 곳을 쳐다보는 눈빛과 치마 끈은 이미 슬쩍 풀어놓고 윗저고리를 벗으려는 모습을 보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자연스럽게 추측하게 만든다.

참으로 에로틱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윗저고리 밑으로 한 가닥 내려온 저 붉은 빛의 속옷고름.

이 그림을 바라 보면서, 혹은 그림 속 주인공 때문에(실제 인물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조선시대 뭇 남정네들이 애간장을 녹였을까? 그리고 신윤복은 어찌도 이리 선이 곱게 그림을 그려냈을까? 스스로도 자기가 그린 그림에 감탄했는지 이 그림에다 이런 글을 써 놓았다.

“이 조그만 가슴에 서리고 서려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을 붓끝으로 어떻게 그 마음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느뇨?”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에서).

앞에서 밤꽃 내음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기생으로 보이는 이 그림 속 여인이나 월하정인의 여인의 허리춤에는 어쩌면 잘 말린 정향과 장미 꽃잎과 섞인 밤 꽃잎이 비단 주머니에 곱게 담겨 매어져 있지는 않았을까? (당시에는 향기가 짙은 꽃 잎을 잘 말려서 넣거나 조금 돈이 많은 여인들은 중국에서 건너온 고급 향료인 사향과 같은 향료를 넣어서 만든 향낭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직업상 뭇 남정네들의 애간장을 녹여 놓아야 할 운명을 타고 났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설혹 이 여인네들의 비단 주머니 속 향기가 유혹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6월의 어느 밤 창문만 열면 훅하고 끼쳐 들어오는 흰색 밤꽃의 향기에 젊은 한량들의 마음이 어찌 뒤숭숭하지 않았겠는가.

밤꽃 내음이 서민적이고 풍자적이면서 유머러스 하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홍도의 풍속화를 따라올 만한 그림도 없으리라 본다. 학생들이 쓰는 공책 정도의 크기의 책인 단원풍속화첩을 보면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재미있게 그려 넣었다. 이 화첩은 많이 알려진 씨름하는 장면을 그린 <씨름>이나 탈춤판을 그린 <무동>을 포함해서 벼 타작하는 장면, 잎 담배를 써는 장면, 일을 막 끝내고 점심을 먹는 장면 등의 그림 25점이 실려 있다.

 

 

등장 인물들의 표정들이 몇 번의 붓질로만 쓱쓱 그린 것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장면들이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들이 대단히 해학적이라는 것이다. 이 작은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 보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을, 잘못 그려진 것 같은,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어서 달려 있다거나 발이 바뀌어 있기도 하고 완벽하게 똑 같은 손 모양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엔 ‘단원풍속화첩’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이 너무나 많이 나온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지를 않고 화가가 의도한 실수라고 얘기한다. 어쩌면 고단한 삶을 사는 서민들에게 주고 싶었던 대 화가의 ‘작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선물은 즐거움과 웃음.

어떤 의미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던 ‘단원풍속화첩’ 자체가 이미 서민들에게는 고마운 선물이었을 테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고단한 자신들의 일상을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서 삶에 위안을 삼거나 즐거움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김홍도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애교스러운 실수들을 숨겨 놓아 우연히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들이, “이 그림 이상한데, 천하의 김홍도가 실수도 하네”라면서 박장대소라도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해학적인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들이 유쾌한 농담처럼 보이는 밤꽃 내음과 비슷하지 않은가? 때론 짓궂은 음담패설 같기도 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유머 같기도 하고, 진솔한 삶을 사는 서민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1970년대 하나에 모리나 다카다 겐조,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와 같은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들고 유럽으로 건너 갔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 일본의 독특한 복식 문화는 유럽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본 디자이너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유럽에서는 이미 오랜 전부터 우키요에와 같은 일본의 많은 문화들이 소개되어 교두보를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유럽에서 패션쇼를 하면서 부티크를 내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또 한가지 한 일은 스스로의 패션 철학을 담은 향수를 런칭하는 일이었다. 이들이 만들어 내놓는 많은 향수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향수는 한 나라의 문화를 수출하는 문화 상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향수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만의 색을 지닌,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독특한 멋과 향기를 지닌 향수.

일본에 기모노가 있으면 우리나라엔 한복이 있고 일본에 우키요에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엔 위에서 얘기했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가 있다. 물론 다양한 차이가 있겠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는 일본 우키요에의 딱딱한 목판화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유머다. 게다가 미인도와 같은 그림은 요염하기까지 하다.

그럼 이제 이러한 고유한 문화들을 뒤섞고 다듬어서 향수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이 향수에 잘 어울리는 향은 어떤 향이 좋을까? 그리고 어떤 향료를 사용해야만 할까?란 문제가 남는다.

이젠 너무나 글로벌화 되어 있어 한 지역에서 혹은 한 국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향료란 흔하지가 않다. 특히 향료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향수 역사가 미천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언뜻 떠 오르는 향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소나무 향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온 산을 뒤덮고 있는 소나무의 향은 굳건하고 지조가 있어 보인다. 고집스러운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모를 닮았다. 그리고 사군자에 속하는 난 꽃의 향기와 매화 향도 있다. 난 향은 섬세하면서 고요한 것이 먹과 붓으로 그린 무채색의 수묵화를 닮았다. 봄에 피는 매화의 향기는 단순하면서 정갈해 보인다. 은장도의 서늘한 빛 같기도 하고 곱게 쪽진 과거 여인네들의 머리와 비녀를 보는 듯 하다.

6월과 7월의 향기로 해학적인 밤꽃 향기를 얘기했는데, 요맘때 대기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향기가 있다면 자귀나무 꽃 향일 것이다. 이 꽃 향과 함께 밤꽃 향, 그리고 그 이전 이른 봄에 향기를 퍼드리는 목련의 향기는 미인도의 여인에게서 풍기는 요염함을 닮았다.

이런 향기들로부터 색깔을 찾고 음을 찾아서 한복의 고운 색을 만들어내고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향수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라임로즈의 향수 이야기